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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Book Review)

[최훈] 데카르트 & 버클리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피그브라더 2020. 11. 6. 17:35

0. 책 정보

1. 제목 : 데카르트 & 버클리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2. 저자 : 최훈

3. 출판사 : 김영사

4. 출간일 : 2019년 07월 01일

5. 쪽수 : 176 페이지

6. 정가 : 95,000원

 

 

 

 

 

 

 

 

 

 

1. 읽게 된 계기

지식인 마을 시리즈의 책들을 대량으로 구매해놓고 사실 읽은 건 한 권밖에 없었다. 매일 IT 공부에만 매진하다 보니 시간이 없었다고 핑계를 댈 수 있겠다. 그러다가 한 달 전인 2020년 10월 8일, 산업기능요원 복무 때문에 훈련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들어가기 전에 생각한 것이, 들어간 김에 평소에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이나 가져가서 읽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져간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과감하게 철학 주제의 책을 들고 갔는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철학이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이 들기 마련인데, 이 책은 어렵게만 느껴지기 쉬운 철학을 그래도 최대한 쉽게 풀어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2. 책의 주제, 간단한 내용 요약

이 책은 교회의 영향력이 강했던 중세 시대가 막을 내리고 근세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대표적인 두 명의 철학자에 대해 다룬다. 바로 데카르트와 버클리이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을 통해 확실한 지식의 토대를 찾고자 노력한 합리론자이다. 이때 무작정 의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지식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서 의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의심 방식을 방법적 회의라고 부른다. 방법적 회의에서 사용되는 주된 논증 세 가지는 바로 감각의 착각, 꿈의 논증, 악마의 논증이다. 특히 이 중에서 악마의 논증은 현대에 와서 등장한 통 속의 뇌 논증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데카르트는 이러한 세 가지 논증을 통해 확실한 지식을 하나 찾아낸다. 그것은 바로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여기서 '나'는 '생각하는 나'를 의미한다. 의심하는(→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의도와 달리 이러한 세 가지 논증은 이후에 등장할 많은 회의론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회의론자가 아니지만 회의론자의 명예의 전당에 가장 먼저 오를 만한 인물인 것이다.

 

반면에 버클리는 대놓고 회의론을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외부 세계의 대상이 마음과 독립적인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념으로서 존재한다는 비 물질론을 내세웠다. 버클리는 모든 외부 세계의 대상이 지각될 때만 (관념으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말대로라면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버클리는 신을 내세웠다. 우리가 지각하고 있지 않아도 신이 늘 지각하고 있으니 외부 세계의 대상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앞서 말한 통 속의 뇌 논증이 이러한 주장과 대응된다. 컴퓨터가 신이고, 전기 자극이 관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클리도 결국에는 회의론을 완벽히 반박하진 못했다. 신의 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한계에 부딪혔을 뿐 아니라, 회의론자들이 실제로 주장하는 것은 "외부 세계의 대상이 마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버클리도 회의론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버클리의 주장에서 신의 이야기만 빼면, 이후에 완벽한 회의론자로 등장하는 흄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3. 인상 깊었던 부분

사실 이 책이 데카르트와 버클리를 다루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데카르트의 세 가지 논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지금 감각하고 있는 것이 감각의 착각이 아니라는 보장을 할 수 없고, 내가 지금 꿈이 아니라고 말할 근거가 없으며, 어떠한 전지전능한 신(악마)에 의해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근거도 없다는 게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모두 다 틀린 것일 수도 있으려나?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들이 거짓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지식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알고 있던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려 할 뿐. 그러한 면에서 데카르트가 굉장히 대단해 보였다.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지식들을 갖다 버리고, 확실하고 안전한 지식의 뿌리를 새로 찾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의 배경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굉장히 재미가 있었다. 솔직히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일반인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대부분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라든가 "나는 축구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은 패러디의 도구로만 알고 있을 것이고 나도 그랬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이 유명한 명언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에 대단히 감사하다. 이 책을 다 읽은 뒤 훈련소에서 같은 생활관을 사용하는 전우 한 명에게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해줬는데, 그분이 굉장히 재미있게 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뿌듯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가 주는 교훈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데카르트처럼 모든 것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의심할 만한 이유가 존재한다면 의심을 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건전한 의심의 자세를 갖출 때, 비로소 우리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비판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편리를 위해 그냥 믿고 넘어가는 것들도 많지 않을까?

 

4. 읽고 난 후기

사실 철학이라고 하면 일단 거리부터 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과를 나와서 공대생으로 살아가다 보니 직접 찾아보지 않는 이상 철학을 접할 일이 거의 없었을뿐더러, 직접 찾아보기에는 또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필자가 굉장히 쉽게 풀어쓴 노력이 보이는데도 이해를 못한 부분이 많아서 자괴감이 들긴 했다. 특히 데카르트의 이야기가 끝나고 버클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많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다 읽긴 했는데 이런 점은 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모든 부분을 이해해야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 책은 굉장히 나에게 의미가 있다. 데카르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점이 많았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그것을 통해 알게 된 것, 배우게 된 자세도 분명히 있다. 이거면 된 거 아닐까? 항상 모든 걸 이해하려 하는 강박증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은데, 그러한 강박증을 어느 정도 내려놓게 해준 계기가 된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데카르트를 배웠고, 데카르트를 통해 조금 더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나를 얻었다. 이걸로 만족하고 이제 이 책과는 인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