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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Book Review)

[장대익] 다윈 & 페일리 (진화론도 진화한다)

피그브라더 2020. 1. 13. 23:39

0. 책 정보

1. 제목 : 다윈 & 페일리 (진화론도 진화한다)

2. 저자 : 장대익

3. 출판사 : 김영사

4. 출간일 : 2019년 05월 11일

5. 쪽수 : 220 페이지

6. 정가 : 9,500원

 

 

 

 

 

 

 

 

 

1. 읽게 된 계기

2020년 새해를 맞아 독서 습관 들이기를 목표로 삼게 되면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추천을 받아 관심이 생긴 책이 있었으니, 바로 김영사 출판사의 '지식인 마을 1~40 세트'였다. 동서양의 위대한 지식인 100명의 사상과 업적을 쉽게 풀어서 40권에 담았는데, 각 책이 300쪽을 넘지 않는 분량이어서 부담 없이 읽기 좋다고 판단하였다. 세트 품목은 완판 되어 구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책 개별로는 아직 판매 중이어서 일일이 하나하나 찾아서 카트에 담아 한 번에 주문하였다. 그리하여 첫 번째로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지식인 마을 1권이어서 처음으로 읽은 것도 있지만, 고등학교 때 생물을 재미있게 공부했던 만큼 주제 자체도 어느 정도 흥미가 가는 분야여서 바로 집어서 읽게 되었다.

 

2. 책의 주제, 간단한 내용 요약

책의 가장 큰 줄기는 바로 현대에 와서도 종종 논쟁이 불거지곤 하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이다. 창조론을 이해하기에 앞서 우선 페일리의 『자연신학』을 중심으로 한 설계 논증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이어서 다윈이 비글호 탐험을 하며 얻은 경험으로 『종의 기원』을 출판하며 진화론을 탄생시키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이후 진화론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루고 진화론 내부에서는 어떠한 한계에 부딪히고 어떠한 논쟁에 불이 붙었는지 소개한다. 더불어 다윈 후예라고 할 수 있는 후대 과학자들의 발자취와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분야들을 살펴보면서 다윈의 영향력을 묘사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가상 시나리오로서 갈릴레오와 다윈을 각각 세이건과 도킨스가 대변하며 토론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마지막으로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을 현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필하였다.

 

3. 인상 깊었던 부분

  • 고등학교 때 생명과학을 공부하면서 들었던 익숙한 이름, 이론, 동물들이 곳곳에 등장하는 게 무척이나 반가웠다.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 새를 보고 이후 진화설을 떠올렸다는 설이나, 라마르크가 기린의 목을 근거로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고 주장했던 것들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 진화론은 익숙했지만 창조론은 그냥 과학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뜬 구름 잡는 얘기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 창조론(혹은 지적설계론과 설계 논증)을 주장하는지는 대강 알게 된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창조론을 믿게 되었다는 건 아니다.
  • 진화론의 힘이 그토록 강력한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내는 부분에서, 도쿄의 지하철 환승역을 설명의 도구로 꺼낸 게 인상 깊었다. 도쿄의 지하철 환승역이 무척이나 긴 건 그저 서로 다른 회사들이 노선 건설을 추진하면서 생긴 부산물일 뿐인데, 운동을 위해 더 많이 걸으라는 의도로 그렇게 지어졌다고 주장하는 건 명백히 오류이다. 이는 마치 진화론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여 모든 표현형들이 적응에 의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비단 진화론에서만 국한된 논리 오류일까? 왠지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이러한 부류의 논리 오류는 흔히 발견될 것만 같다. 당장 예시는 떠오르지 않지만.
  • 인간은 모든 상황을 재보고 득과 실을 판단하여 합리적 판단을 하는 주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만족화 모형'을 소개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어쩌면 전자가 맞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은데, 만족화 모형의 개념을 듣고 나니 생각이 많이 흔들렸다. 만족화 모형은 사용 가능하고 가장 빠른 시간에 감지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처음 선택된 선택이 만족스러우면 그것으로 선택을 종료하는 의사결정 모형을 말한다. 이는 인간의 뇌가 슈퍼컴퓨터처럼 발달하지 않은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인간의 뇌가 그리도 똑똑하게 발달했다면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서 정말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렸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 사실 언명만으로는 당위 언명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A를 하고 있으니까 A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A를 하고 있다는 건 그저 객관적 사실이고 그것이 A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장하진 못한다. 나조차도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논리 오류에 빠져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금 더 시야를 넓혀서 생각하도록 해야겠다.

 

4. 읽고 난 후기

진화론의 탄생 맥락과 그 자세한 내용, 그리고 창조론의 정체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를 알게 된 게 흥미로웠다. 또한 그토록 유명한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을 정작 읽어본 적은 없는데 이 책을 통해 그 내용이 대략적으로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 알게 되어 좋았다. 물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직접 한 번 읽어봐야겠지만 이렇게 미리 맛보기 하는 것도 괜찮았다.

 

또한 이 책은 나로 하여금 과학사의 발전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게끔 하였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교과서에서 배우는 정설들이 언젠가 다 뒤집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천 년이 더 지나서 이 시기를 되돌아보면 사실 엄청나게 발전된 듯 보이는 현대 문명도 아직 갈 길이 멀은 낮은 수준의 문명이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책에서 아쉬운 점도 조금 있었다. 내가 책을 잘 못 읽는 사람인 탓도 있겠지만, 다윈과 페일리와 연관된 동시대/후대의 과학자들과 그들이 쓴 저서들을 너무 한 번에 많이 설명하여 머리가 복잡하였다. 나중에 가선 누가 뭘 주장했고 무슨 저서를 썼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이 책으로부터 '지식'을 효율적으로 습득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음으로써 새롭게 하게 된 생각들도 있고 인상 깊었던 몇몇 구절들이 남았으니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은 가치는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